우리 구미지역에서는 행정과 정책을 이야기할 때 인근 김천시와 비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도시 규모와 산업구조에는 차이가 있지만, 시민을 대하는 행정의 자세와 각종 행사 운영 방식은 충분히 서로 비교하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그동안 구미시가 주최·주관하는 각종 행사와 축제에서 시민 편의를 위해 불필요한 의전과 축사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여러 차례 지적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구미의 적지 않은 행사장을 가보면 정작 행사의 주인인 시민들은 객석에서 기다리고, 무대에서는 내빈 소개와 인사말이 길게 이어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장을 소개하고, 국회의원을 소개하고, 시·도의원을 소개하고, 기관·단체장을 소개한다. 여기에 축사와 격려사가 이어진다. 더 답답한 것은 연단에 오르는 인사마다 앞서 소개한 내빈들을 다시 한 번 호명하는 경우다.
“○○시장님 참석하셨고, ○○국회의원님 참석하셨고, ○○의장님, ○○도의원님, ○○시의원님….”
한 사람이 끝나면 다음 사람이 또 비슷하게 반복한다. 무대 위에서는 예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무더위와 추위 속에서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짜증과 피로를 불러오는 낡은 의전일 뿐이다. 축제를 즐기러 온 시민들이 왜 정치인과 기관·단체장들의 이름을 몇 번씩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가.
이런 점에서 김천시의 변화는 구미시가 눈여겨볼 만하다.
김천시는 오는 8월 개최하는 ‘2026 김천포도축제’를 형식적인 의전은 줄이고 축제의 본질은 더욱 살리는 ‘실속 축제’로 추진한다. 기존의 개막식을 생략하고 김천포도품평회 시상식으로 개막행사를 대신하는 등 불필요한 형식을 걷어내겠다는 것이다.
특히 3무(無) 축제를 내걸고 불필요한 의전과 형식적인 행사를 줄이는 대신 대한민국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김천포도의 우수성을 알리고 지역 농업인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이는 단순히 ‘개막식 하나를 없앴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행사의 중심을 ‘내빈’에서 ‘시민과 관광객’으로 돌려놓겠다는 행정 철학의 변화다. 지역 언론에서도 배낙호 김천시장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축제의 주인은 시민”, “의례적 의식행사 자제”라는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김천에서는 2025년 10월 이후 축제와 대형 행사에서 의례적인 의식행사가 눈에 띄게 줄었고, 시민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던 형식적인 개막식 역시 사라지는 분위기라고 한다.
배 시장은 시의원 시절부터 불필요한 격식과 의전을 줄여야 한다는 소신을 보여왔고, 시장 취임 이후 이를 실제 행정에 적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같은 김천시의 행보가 소개되자 많은 구미시민들도 공감하고 있다. 일부 구미지역 시·도의원들 역시 행사 때마다 반복되는 내빈 소개와 장시간의 축사를 이제는 줄여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구미도 못할 이유가 없다.
이제 구미시도 각종 축제와 행사에서 ‘의전 다이어트’를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
행사 시작 전 참석 내빈은 사회자가 한 번에 간략하게 소개하면 충분하다. 굳이 소개가 필요하다면 전광판이나 안내 화면을 활용할 수도 있다. 주최 측 대표 한 명이 무대에 올라 행사의 취지와 시민에 대한 감사 인사를 짧게 전하고 곧바로 본행사에 들어가면 된다.
국회의원, 시장, 의장, 도의원, 시의원, 기관·단체장이 차례대로 마이크를 잡고 비슷한 내용의 축사를 반복할 이유가 없다. 꼭 필요한 축사가 있다면 대표 한두 명으로 제한하고 2~3분 이내로 끝내는 원칙을 세워도 된다.
정치인이나 기관·단체장을 홀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시민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치인과 행정기관이 시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초청받은 사람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빈은 시민이다.
시민이 없는 축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시민이 없는 행사에서 내빈의 존재 가치 또한 찾기 어렵다. 시민들이 객석에서 기다리는 동안 무대 위 사람들끼리 서로 소개하고 박수를 주고받는 행사는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다.
특히 구미는 라면축제, 푸드페스티벌을 비롯해 전국 단위의 문화·체육행사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외지 관광객까지 대거 찾는 도시를 만들겠다면 행사 운영 방식 역시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관광객은 시장과 국회의원, 시·도의원의 축사를 들으러 구미에 오는 것이 아니다. 축제를 즐기고, 먹거리를 맛보고, 공연과 프로그램을 체험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찾아온다. 행정은 바로 그 시간을 시민과 관광객에게 돌려줘야 한다.
김천시가 보여주는 변화는 거창한 예산이 필요한 정책도 아니다. 수십억 원짜리 시설을 새로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장과 공직자, 정치권이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당장 다음 행사부터 시행할 수 있는 행정혁신이다.
구미시도 이제 결단해야 한다.
내빈 소개 20분, 축사 30분짜리 행사가 아니라 시민에게 50분을 돌려주는 행사를 만들자. 정치인 중심의 무대가 아니라 시민 중심의 축제로 바꾸자.
시민들이 박수를 치는 이유가 ‘축사가 드디어 끝나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천이 먼저 시작했다면 구미는 더 잘하면 된다.
축제의 주인은 시장도, 국회의원도, 시·도의원도 아니다. 시민과 관광객이다.
구미시가 이 간단한 원칙부터 행사 운영의 기준으로 세우길 바란다. 불필요한 의전과 축사를 과감히 걷어내는 것, 그것이 시민을 진정으로 ‘귀빈’으로 대접하는 행정의 첫걸음이다.